콘텐츠의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기준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주목할 흐름은 ‘B급 콘텐츠’라 불리는 하위문화적 감성이 점차 대중성과 시장성을 획득하며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허술한 연출, 저예산 제작, 기괴하거나 키치적인 연출로 인해 ‘비전문적’, ‘질 낮은 콘텐츠’로 평가되던 이 장르가,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과 시청자 취향의 세분화에 따라 오히려 주류보다 강한 몰입도와 팬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틱톡, OTT의 알고리즘 환경은 실험적이고 비정형적인 콘텐츠가 바이럴로 확산되는 데 최적화되어 있고, B급 콘텐츠의 감성은 이러한 구조에 기민하게 반응합니다. 이 글에서는 B급 콘텐츠가 가지는 감성의 본질, 그것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소비 생태계, 그리고 주류 문화와의 경계 해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B급 콘텐츠가 가진 고유 감성의 정체
B급 콘텐츠는 단순히 ‘질 낮은 콘텐츠’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래 영화계에서 ‘B급’은 낮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상업영화 라인업의 보조편성을 의미했으나, 현재 디지털 시대의 B급 콘텐츠는 특정 감성과 연출 스타일, 접근 방식을 뜻하는 하나의 ‘문화 코드’로 진화하였습니다. 특히 이 장르가 갖는 핵심적인 매력은 고의적 허술함, 과장된 표현, 유머와 진지함의 뒤섞임, 대중문화 패러디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성은 오히려 ‘정제된 고퀄리티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B급 공포 웹드라마는 어색한 분장과 촬영, 단순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인해 의외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는 “작위적인 리얼리티”라는 아이러니한 매력을 제공하며, 콘텐츠와 거리를 두고 ‘함께 즐기는 감각’을 강조합니다. 또한 B급 콘텐츠는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과 간단한 편집 앱만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이러한 콘텐츠는 틈새 취향을 정조준하며 유사한 감성을 공유하는 사용자 간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병맛 코드’, ‘흑역사 재연’, ‘의도된 어색함’ 같은 장르는 모두 B급 콘텐츠의 감성적 변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콘텐츠들이 ‘완성도’보다 ‘감성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B급 콘텐츠는 저예산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넘어, 감성적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허술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우는 정서, 진지함과 유머를 교차시키는 표현 방식, 고전 문화에 대한 재가공 등은 모두 의도된 장치입니다. 이것이 B급 콘텐츠가 하나의 문화 장르로 확립되고, 사용자로부터 ‘하이 퀄리티’ 콘텐츠와는 다른 방식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만든 소비 생태계
B급 콘텐츠가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디지털 플랫폼’의 존재입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왓챠피디아 같은 콘텐츠 플랫폼은 시청자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며, 틀을 벗어난 실험적 콘텐츠에도 동등한 노출 기회를 제공합니다. 과거에는 방송사나 영화관처럼 ‘입점 장벽’이 있었던 반면, 오늘날의 플랫폼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러한 플랫폼 생태계는 B급 콘텐츠가 가진 ‘낯섦과 신선함’을 바이럴 요인으로 전환시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는 편의점 야간 알바 브이로그를 극사실주의 공포처럼 편집하거나, 저예산으로 만든 B급 액션 시리즈가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광고마저 B급 문법을 차용해 사용자 몰입을 이끌기도 합니다. 예능 <피식 대학>, <채널 십오야>, <빠더너스> 등은 전통적인 방송 포맷이 아닌 의도적 불균형과 비정형적 전개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콘텐츠 시장의 정답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또한 플랫폼은 사용자 반응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콘텐츠의 노출 빈도와 위치를 조정합니다. 이 구조는 B급 콘텐츠처럼 처음부터 정제되지 않은 콘텐츠에도 생존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짧고 강한 임팩트, 반복 감상 가능성, 클립화가 쉬운 구성 등은 알고리즘과의 궁합이 뛰어나며, 이것이 B급 콘텐츠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합니다. 무엇보다 플랫폼 생태계는 콘텐츠를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게 만듭니다. 댓글, 짤, 패러디, 팬 콘텐츠 등의 2차 생산이 B급 콘텐츠와의 감성 공유를 강화시키며, 이는 하나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합니다. 즉, 시청자는 단순한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감정 참여자이며, 이러한 구조는 B급 콘텐츠의 확산과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경계를 허무는 흐름
B급 콘텐츠가 대중화된다는 것은 단순히 콘텐츠의 다양화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콘텐츠의 위계’ 자체가 해체되고 있다는 흐름이며, 미디어 산업의 전략과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와 같은 OTT 서비스는 최근 B급 감성을 모티브로 한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주류 포맷으로는 더 이상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비선형적 구조와 상호작용 방식을 통해 전통적 서사 구조를 탈피하였고, 웹 예능 <피식대학>은 B급 개그 코드와 현실 기반 캐릭터의 입체적 구현으로 공중파 이상의 화제성을 확보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청자 수치가 아니라, 콘텐츠가 소셜미디어에서 소비되고 공유되며 변주되는 과정 전반을 고려한 ‘확장성 중심의 콘텐츠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콘텐츠 소비에 있어 ‘전문성과 완성도’라는 기준을 상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시청자는 이제 영상의 해상도, 연기의 완성도보다는 ‘느낌’, ‘공감’, ‘참여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둡니다. 그리고 B급 콘텐츠는 바로 이 정서적 연결성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는 장르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은 미디어 교육과 창작 환경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창작자들은 B급 콘텐츠를 하나의 전략으로 수용하며, 의도적으로 어색함이나 불완전함을 연출하고, 팬덤과 소통하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변형해 갑니다. 즉, B급 콘텐츠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유통-소비-참여가 통합된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콘텐츠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B급 감성 콘텐츠의 주류 진입은 콘텐츠 산업이 한층 유연하고 탈중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입니다. 과거에는 방송국, 영화사, 대형 제작사가 콘텐츠의 기준을 정했다면, 이제는 수많은 사용자와 플랫폼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B급 콘텐츠는 ‘부족함’을 강점으로 바꾸며, 정제된 콘텐츠가 담지 못하는 진정성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콘텐츠는 더 이상 장르나 제작비, 완성도에 의해 평가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감성의 밀도, 정체성의 뚜렷함, 사용자와의 연결성과 같은 비정형적 요소가 콘텐츠의 중심 축이 될 것입니다. B급 콘텐츠는 그 변화를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며, 주류 콘텐츠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콘텐츠의 질적 가치는 이제 수용자의 감정 경험과 공동체적 참여, 그리고 재생산 가능성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B급 콘텐츠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단지 ‘재미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흐름이자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는 텍스트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