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의 도래로 콘텐츠는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그 콘텐츠를 알리는 홍보 영상, 특히 예고편은 유독 진부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작품마다 주제도 다르고, 톤도 다양한데, 왜 예고편은 늘 비슷한 리듬과 방식으로 반복될까요? 감정의 고조, 극적인 음악, 대사 하이라이트, 카운트다운식 편집. 익숙함은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반복은 피로를 낳습니다. 특히 시청자의 선택 기준이 3초 안에 결정되는 이 시대에, ‘기시감’ 주는 예고편은 오히려 콘텐츠 자체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콘텐츠 홍보 영상이 왜 진부해졌는지를 분석합니다. 단순히 제작비 문제나 편집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기획 방식, 그리고 소비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피로 현상을 예고편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예고편의 정형화: 시작은 시청률, 끝은 알고리즘
드라마나 영화 예고편이 진부해졌다는 평가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진부함이 일시적인 피로를 넘어, 산업의 고착화로 굳어졌다는 점입니다. 그 시작은 지상파 시대의 시청률 경쟁이었습니다. 높은 시청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주목도’였고, 그 주목도를 끌어내기 위한 방식은 감정의 최고조 순간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갈등의 클라이맥스, 충격적인 대사, 인물의 눈물 등은 예고편의 고정적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OTT 시대 이후에도 이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플랫폼 알고리즘은 예고편의 ‘초반 주목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5초 안에 시청자의 클릭을 유도해야 하는 알고리즘 환경에서는, 감정적 클리셰와 극적 편집이 여전히 유효한 선택처럼 보입니다. 그 결과, 콘텐츠의 다양성과는 무관하게 예고편은 점점 ‘하나의 공식’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로맨스는 음악과 감정 고백, 스릴러는 숨죽인 편집과 섬뜩한 대사, 청춘극은 빠른 컷과 음악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정형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제작사나 유통 플랫폼 모두 안정적인 예고편 구조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다르게 보여주자’는 시도보다는 ‘검증된 방식’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리스크 회피를 위한 전략이 반복을 낳고, 반복은 결국 시청자의 피로로 돌아옵니다.
구조적 피로의 누적: 홍보 영상이 콘텐츠를 소모시킨다
예고편은 콘텐츠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예고편 구조는 오히려 콘텐츠의 감정선을 소모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이라이트 장면, 반전의 실마리, 인물 간의 핵심 대립 구도가 모두 예고편 안에서 공개되다 보니, 정작 본편을 보는 순간 놀라움이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편집의 문제가 아니라, 홍보 방식의 철학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예고편 제작자는 보통 본편 대본과 편집본 일부만을 받아 영상 구성에 들어갑니다. 이때 ‘감정을 설명해주는 장면’을 먼저 찾게 되고, 감정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음악이나 사운드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고정됩니다. 문제는 이 접근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시청자는 화면이 어두워지면 ‘충격 장면이 나오겠구나’, 음악이 멈추면 ‘대사가 나오겠구나’ 하는 예측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이 예측 가능성은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콘텐츠 자체의 깊이를 사전에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또한 예고편의 ‘길이’ 문제도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짧은 예고편은 흥미를 자극하기도 전에 끝나버리고, 긴 예고편은 요약 영상처럼 느껴지며 본편의 시청 동기를 떨어뜨립니다. 특히 예고편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오히려 작품의 결말 암시처럼 느껴지는 경우는 홍보가 아니라 콘텐츠의 소진으로 작용합니다. 이는 시청자에게 ‘콘텐츠가 아닌 예고편만으로 충분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습니다.
기획 단계의 문제: 창의성보다 안전을 택하는 현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예고편 기획 단계에서부터 창의성보다 안전을 택하는 구조입니다. 대다수의 예고편은 제작사의 내부 마케팅 부서 또는 외주 업체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검증된 톤’입니다. 타 장르 예고편을 참고하거나, 이전 성공작의 구성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기획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기획자의 불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때 효과가 미비하거나 부정적 반응이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난한 예고편’이 선호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입니다.
또한 콘텐츠 제작 속도가 빨라지고, 예고편 제작 기간은 점점 짧아지면서, 영상 기획자가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감정선을 분석할 시간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예고편은 본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 기술의 결합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이는 영상 기획의 전문성과 제작 현장의 소통 부족이 만든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와 동시에 플랫폼의 데이터 중심 전략은 기획자의 자율성을 더 줄이고 있습니다. 특정 시청자 층이 선호하는 자막 위치, 음악의 흐름, 대사의 밀도까지 분석된 결과를 바탕으로 예고편이 제작되며, 이 과정에서 기획자의 창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는 줄어듭니다. 결국 창의성이 사라진 예고편은 감정이 아닌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고, 시청자에게는 익숙하지만 무미건조한 ‘기능성 영상’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결론: 예고편의 회복은 감정의 복원에서 시작된다
예고편이 진부하다는 진단은 단순히 기술이나 연출 방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콘텐츠를 바라보는 방식, 기획의 태도, 그리고 시청자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철학의 문제입니다. 결국 예고편은 시청자에게 “이 작품이 왜 특별한가”를 설득해야 하는 영상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예고편은 대부분 “이 장면이 왜 자극적인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진부함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예고편의 기능이 아닌 감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영상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음악과 컷 구성, 대사 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는 감정의 흐름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놀람’보다 ‘기대’, ‘설명’보다 ‘암시’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몰입감 있는 예고편은 콘텐츠의 핵심 정서를 30초 안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정서가 시청자의 감정과 맞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효과적인 홍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기획자와 편집자는 이제 시청자보다 더 먼저 지루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내부라면, 외부는 더 빠르게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예고편은 더 이상 대단한 기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콘텐츠의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감정은 반복되지 않지만, 기술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결국 좋은 예고편은 기술을 넘어 감정을 복원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진부함은 창의성의 반대가 아니라, 감정 없는 반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