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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드라마 세트장은 다 똑같을까? (공간, 비용, 시각)

by chocolog 2026. 1. 14.

왜 드라마 세트장은 다 똑같을까? 이미지

드라마를 자주 보는 시청자라면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의문이 있습니다. “왜 다 비슷하게 생겼지?” 거실 구조, 주방의 위치, 복도와 계단의 형태까지, 어느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익숙한 세트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심지어 인테리어 소품이나 벽지의 색조까지 유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드라마 세트장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시각적 통일성, 제작 효율성, 비용 절감, 시간 압박 등 여러 현실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간’, ‘비용’, ‘시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드라마 세트장이 왜 이토록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공간의 제약: 창작보다 반복을 택한 현실

세트장은 드라마의 장면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무대입니다. 그러나 이 무대는 상상 속 공간이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대다수의 드라마는 정해진 제작 스케줄과 예산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 이미 구축된 세트장을 재활용하거나, 기존 공간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의 경우, 경기도 일대에 위치한 세트장 단지들이 주로 활용됩니다. 이곳에는 이미 ‘드라마용 아파트’, ‘전형적인 단독주택’, ‘병원 복도’, ‘학교 교실’ 같은 세트들이 조립식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상황에 따라 가구나 벽지 정도만 교체해도 전혀 다른 드라마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현실적인 선택이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듭니다.

공간이 창작의 대상이 아니라 반복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이야기의 세계관까지도 단조로워질 수 있습니다. 인물의 감정이나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 항상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 감정의 울림도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의 집이 이전 드라마 속 다른 인물의 집과 똑같은 구조라면, 감정 이입에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즉,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밀도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용과 스케줄: 창의성보다 효율이 우선되는 제작 구조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비용은 늘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특히 상업 드라마의 경우, 제작비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가장 먼저 조정되는 항목이 세트 제작비입니다. 현실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트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데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소요됩니다. 그에 비해 기존 세트를 약간 수정하는 방식은 비용을 70% 이상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작사는 ‘창의성’보다는 ‘효율’을 택하게 됩니다.

또한 촬영 스케줄도 세트 유사화의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한국 드라마는 회차당 촬영 시간이 매우 타이트합니다. 주 2회 방송을 기준으로 할 때, 보통 두세 주 만에 한 회차를 완성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는 촬영 장소를 매번 새롭게 마련하고, 이동하고, 조명과 음향을 다시 세팅하는 데 드는 시간이 너무 큽니다. 따라서 제작진은 이미 조명, 음향, 카메라 동선이 익숙한 세트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게 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OTT 오리지널 드라마도 지상파 못지않은 속도로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청자들은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콘텐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감에 맞추기 위해서는 제작 환경도 속도 중심으로 개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공간에 대한 창의성은 '제작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사치가 되었고, 제작사들은 콘텐츠의 ‘완성’보다는 ‘완료’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시각적 감각의 정형화: 익숙함이 기준이 된 시대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공간은 인물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사건의 분위기를 만들며, 장르의 느낌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공간들이 모두 비슷해질 경우,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감각적으로도 단조로운 인상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트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적 감각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한국 드라마는 일정한 미술·조명 톤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따뜻한 색감의 조명이, 스릴러에서는 회색 톤의 냉정한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톤 앤 매너는 ‘장르적 통일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시각적 다양성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반복이 시청자에게 '기대'가 아닌 '예측'을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의 집은 항상 모던한 가구와 블랙&그레이 톤으로 구성되고, 여자 주인공의 집은 화이트&우드톤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가 반복됩니다. 이 패턴은 인물의 성격이나 배경을 세트로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기존에 만들어진 공식에 맞추는 방식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드라마는 개별적인 매력을 갖기보다는 ‘비슷한 느낌의 콘텐츠’로 인식되게 됩니다.

결론: 공간의 진부함은 서사의 피로로 이어진다

드라마 세트장이 다 똑같이 보이는 현상은 단지 미술적인 반복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콘텐츠를 구성하는 철학, 제작 환경, 기획 의식의 총합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인물의 감정과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 공간이 계속해서 비슷한 구조와 톤, 스타일로 반복된다면,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감정의 깊이 또한 점차 얕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트장이 익숙하다는 것은 시청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그 익숙함이 반복될 때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을 만나고자 하는 시청자에게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은 가장 큰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이야기 자체에 대한 피로로 이어지며, 시청자의 이탈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따라서 콘텐츠 기획자와 제작자는 공간을 단순한 제작 항목이 아닌, 이야기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기존의 세트 안에서도 다른 시선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은 없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조명의 위치, 카메라 앵글, 가구의 배치만으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공간이 살아 있어야 이야기 역시 살아 움직입니다. 결국 드라마의 힘은 그 안을 채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공간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살아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