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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이유와 그 이면의 변화

by chocolog 2026. 1. 20.

최근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번 회차에서는 별일이 없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크게 다치지도 않고, 극적인 반전이 터지지도 않으며, 서사의 방향이 눈에 띄게 바뀌지도 않는 회차가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과거라면 이런 회차는 흔히 ‘늘어지는 회차’나 ‘쉬어가는 회차’로 평가받았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이런 회차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이야기를 끌기 위한 전략이거나 작가의 역량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현상을 시청자 취향의 변화, 서사 구조의 이동, 콘텐츠 소비 환경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드라마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가 숨어 있습니다. 사건이 없다는 인상 뒤에 숨겨진 제작과 서사의 선택을 차분히 짚어봅니다.

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이유와 그 이면의 변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회차가 불편해진 순간

드라마를 보며 “오늘 회차는 뭐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습니다. 분명 60분 가까운 시간을 시청했지만, 머릿속에 남는 사건은 거의 없고 인물들의 대화와 표정, 공간의 분위기만 희미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의 드라마 문법에서는 이런 회차가 비교적 명확하게 문제로 인식되었습니다. 매 회차마다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이 고조되며, 다음 회차를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규칙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없는 회차가 중간중간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요한 흐름처럼 자리 잡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느리게 끌고 가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더 이상 매 회차마다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이 반드시 최선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대신 인물이 어떤 상태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어떤 감정 속에서 관계가 미세하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씁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건 중심의 서사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아무 일도 없는 회차’는 쉽게 지루함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회차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드라마가 더 이상 사건만으로 평가받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건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사건’의 기준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누군가의 죽음, 사고, 폭로처럼 외부에서 명확하게 인식되는 변화만이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는 인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이동을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의 선택 기준이 바뀌거나 관계의 온도가 달라지는 순간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이런 변화는 빠른 전개보다는 축적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한 회차를 통째로 사용해 인물의 상태를 보여주는 방식이 선택됩니다. 또한 OTT 환경의 영향도 큽니다. 정해진 시간에 시청해야 했던 방송 환경과 달리, 지금의 시청자는 언제든 다음 회차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한 회차 안에서 반드시 폭발적인 사건을 넣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대신 전체 흐름 안에서 이 회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선택이 모든 시청자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건 중심의 몰입을 기대한 시청자에게 이런 회차는 공백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야기의 밀도가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밀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건이 없는 회차는 실패가 아니라 방향의 선택이다

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현상을 무조건적인 퇴보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드라마가 자극적인 전개만으로 시청자를 붙잡는 시대를 지나, 감정과 상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선택은 위험을 동반합니다. 감정의 흐름이 충분히 설득되지 않으면, 시청자는 그 회차를 ‘의미 없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물의 내면과 관계 변화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면 사건이 없어도 강한 여운을 남길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의 유무가 아니라, 그 회차가 전체 이야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입니다. 시청자는 더 이상 큰 사건만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이야기가 자신이 느끼는 현실의 감정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봅니다. 사건 없는 회차가 늘어나는 현상은, 드라마가 점점 현실의 호흡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불편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