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소비되는 드라마 장르 중 하나이며, 그만큼 특정한 전형성(클리셰)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르입니다. 이러한 클리셰는 익숙한 감정선을 형성해 몰입을 유도하는 장점도 있지만, 때로는 반복성으로 인해 예측 가능성과 진부함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국내외 로맨스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클리셰들을 분석하고, 그 기능과 비판, 그리고 최근 변화 양상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대표적인 로맨스 클리셰 유형
로맨스 드라마에서 자주 반복되는 클리셰는 크게 6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계급 차 로맨스입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구조 중 하나로, 경제적·사회적 배경이 다른 두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는 재벌가 자제와 평범한 아르바이트 여성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며, SBS 《상속자들》에서는 상류층 고등학생과 집사 딸이 주인공 커플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제공하면서도, 갈등과 장애 요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냅니다.
둘째, 티격태격 → 사랑이라는 전개 구조입니다. 초반에는 불편하거나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인물들이 차츰 감정을 쌓아가며 연애 관계로 전환됩니다.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SBS 《질투의 화신》, KBS 《쾌걸춘향》 등에서 이러한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 구조는 시청자에게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를 주며, 두 인물 간의 '케미'가 중심 흥미 요소로 작용합니다.
셋째, 우연의 반복입니다. 반복적으로 우연히 마주치거나, 동거를 하게 되거나, 고향 친구로 밝혀지는 등 극적인 설정이 몰입을 유도합니다. MBC 《그녀는 예뻤다》에서는 회사에서 다시 만나고, tvN 《도깨비》에서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인연으로 설정되며, 우연성은 필연적 사랑을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넷째, 기억상실·불치병·사고 등 비극적 장애 요소입니다. 감정적 고조와 긴장감을 위해 삽입되는 장치로, SBS 《천국의 계단》, KBS 《가을동화》에서 주요 요소로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전개는 시청자에게 눈물과 감정 소모를 유도하며, ‘사랑의 숙명성’을 강조합니다.
다섯째, 삼각관계 및 방해자 등장입니다. 주인공 커플 외의 제3자가 등장해 갈등을 일으키며, 갈등 구조를 극대화합니다. 예를 들어 《시크릿 가든》의 오스카, 《괜찮아, 사랑이야》의 조인성·이광수 관계 등이 있습니다.
여섯째, 첫사랑 회귀입니다. 오랜 시간 떨어졌다가 우연히 재회한 첫사랑과 다시 인연을 맺는 구조로, 향수와 감성 코드에 호소합니다. tvN 《응답하라 1988》, KBS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등이 대표적입니다.
2. 클리셰의 기능과 시청자 반응
로맨스 클리셰는 그 자체로 오랜 시간 동안 장르적 안정성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는 ‘감정의 공식’처럼 작동하며, 시청자에게 익숙한 패턴 속 안정된 몰입을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앙숙 로맨스’는 시청자에게 감정의 전환점을 예고하며,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도록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 → 이해 → 사랑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은 드라마의 서사적 리듬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한 ‘재벌 클리셰’는 한국 사회의 계층 구조와 현실적인 소망을 반영하면서, 일상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판타지를 제공해 왔습니다. 이는 시청자에게 해방감과 대리 만족을 동시에 제공하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클리셰는 점차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고 ‘구원받는 존재’로만 표현되거나, 남성 캐릭터가 일방적인 능력자 또는 고집스러운 주도권자로 등장하는 패턴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특히 젠더 감수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이러한 클리셰가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 또한 점점 더 복합적이고 현실적인 감정 서사를 기대하게 되었으며, 기존의 일방적인 구조나 극적인 우연 전개가 감정적 설득력 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3. 클리셰의 변화와 진화 양상
2020년대 이후 로맨스 드라마는 클리셰를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변형·재해석·해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tvN 《나의 해방일지》는 전형적인 고백이나 고조되는 갈등 없이도 인물들의 일상적 대화와 무심한 표현 속에서 감정을 전달합니다. ‘해방’이라는 주제를 통해 감정 관계보다도 개인 내면의 성장과 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며, 기존 클리셰와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넷플릭스 《사랑의 불시착》은 남북한이라는 독특한 배경 설정을 이용해 판타지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클리셰를 유머와 현실의 경계에서 소화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기존의 ‘이질적인 환경 → 갈등 → 극복’이라는 서사를 따르면서도, 정치·문화적 함의까지 고려해 이야기를 확장했습니다.
또한 JTBC 《서른, 아홉》, tvN 《사랑의 이해》 등은 인물 간의 갈등보다는 감정의 선택, 일상의 반복, 인간관계의 지속성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감정의 절정보다 관계의 현실성과 정서적 잔상을 강조하며, 기존 로맨스의 클리셰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서사 흐름을 보여줍니다.
해외의 경우 넷플릭스의 《노멀 피플》, 《브리저튼》은 관계 중심의 묘사와 다양한 성적 정체성, 인종적 배경을 녹여내며 기존의 ‘이성애 백인 중심 로맨스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있습니다.
결론: 클리셰는 진화 중인 감정 언어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클리셰는 단순한 ‘틀’이 아니라, 감정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언어적 장치로서 기능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회 인식의 변화, 시청자의 감정 기대치 변화에 따라 클리셰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으며, 오늘날에는 비판적 재해석과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 중입니다.
감정의 구조가 변화하는 만큼, 로맨스 드라마는 클리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 새로운 감정의 층위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이는 ‘누가 누구를 사랑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랑을 느끼고 변화해 가는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로맨스 드라마를 감상할 때는 단순히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반복되는 감정 장치의 의미, 클리셰의 활용 방식,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을 함께 관찰해 본다면 더 깊이 있고 비판적인 감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클리셰는 끝난 언어가 아니라, 지금도 새롭게 쓰이는 감정의 문법입니다.